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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참여 게시판

중동 건설 현장에서 보낸 31개월 작성일 2019.11.15





"중동 건설 현장에서 보낸 31개월"


내 나이 27살 건설 현장에서 목수로 일하는 동안

소득은 괜찮은 편이었는데

함께 일하는 동료를 따라 늦게 배운 술로 인하여

흥청망청” 돈이 바람을 타고 날아가는 것을 깨닫고

중동으로 떠나는 꿈을 꾸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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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년 오만에서 쉬는 날 해변에 나가서


현대건설에 취업하여

1981년 6월 30일 오만 정유공장 건설 현장에 도착하여 일하는 날

"오늘은 온도가 얼마나 올라갔을까?"

백엽상에 놓인 온도계가 끝까지 올라간 것을 확인하였으니

현장에서 온몸으로 느끼는 온도는 상상을 초월하였습니다.

이 땅을 언제나 떠나게 될까?”

제발 뜨거운 오만을 빨리 떠났으면 좋겠다.

더위를 이기지 못하고 귀국하는 동기도 있었으나

왕복 항공료를 변상하고 고국으로 돌아갈 근로자는 별로 없습니다.

오만에서 4개월을 근무하였을 때 

리비아로 떠나는 전출자 명단에 포함된 것입니다.


드디어 뜨거운 나라” 오만을 떠난다.

즐거운 마음으로 10여 명이

리비아 벵가지로 출발 직행하는 비행기가 없으니

시내버스와 같이 작은 비행기를

이곳에서 타고 저곳에서 갈아타는 동안 고생도 많이 했습니다.


요르단 공항에 도착하여 리비아 벵가지로 가는

비행기를 기다리는데 연착을 밥 먹듯이 합니다.

공항에서 온종일 기다리다 배가 고파서

머리를 굴리다가 대사관으로 전화하여 도움을 구했습니다.

대사관에서 현대종합상사에 전화하여

직원 두 명이 빵과 음료를 사 오는 촌극이 벌어지기도 했습니다.

어찌하여 대사관에 전화하여 우리 회사를 창피하게 하느냐

핀잔을 주는 직원에게 우리가 리비아로 가는 동안

회사에서 용돈을 한 푼도 주지 않았으니 이런 결과가 난 것입니다.

배가 고파서 전화한 것이 무슨 죄가 되느냐 항변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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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국하기 전에 추억으로 남긴 사진


리비아 벵가지 석유비축기지 현장에서 

11개월을 근무하는 동안

습도가 높아 머리에서 흘러내리는 땀방울이

양발에 흠뻑 젖어 무좀이라는 나쁜 것이 

내 발톱에 들어와 오늘까지 떠나지 않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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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야드 외교단지 현장에서 왼쪽

귀국하여 현장에서 일하다가 1983년 한양주택에 취업하여

사우디아라비아의 수도 

리야드 외교단지 현장에서 12개월을 근무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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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내장산에서 


귀국하여 현장에서 일하다가 삼호주택에 취업하여

1985년 사우디아라비아 알핫사 호포프

도시를 건설하는 현장에서 4개월이 되었을 때

사고가 났으니 중동에서 땀을 흘린 기간이 모두 31개월입니다.

27살 때 처음 중동 건설 현장에 발을 디디고,

31살이 되었을 때 영원히 걷고 

뛰지 못하는 중증장애인이 되었지만,

육체의 아픔을 통하여 내가 죄인인 것을 깨달았습니다.




"중증 장애인으로 34년"


세월은 안개와 같이 빠르다고

성경에 나와 있는 것 같이 

내 삶의 여정이 참으로 빠르게 흘러갔습니다.

1985년 11월 15일 오전 7시 

사우디아라비아 사막의 건설 현장에서

사고로 말미암아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죽음의 언덕을 넘어갈 때

나를 살려주시면 하나님을 믿겠다고 

감히하나님 아버지와 흥정을 한 날이 

어제와 같은데 

어느덧 34년이 지나갔습니다.


현장에서 숙소로 이동하여 

어둠이 내리는 저녁때까지

야전 침대에 누워서 

조금도 움직이지 못하고 

아픔으로 말미암아 하염없이 

눈물만 흘렀습니다.

죽음의 공포가 

내 삶에 밀려오는 순간이었습니다.


해가 진 다음 작은 병원으로 이동되어

상체와 하체가 분리되는 아픔을 겪으며 

일주일 동안

아픔을 멈추는 진통제 주사를 

한 번도 처방하지 않은 

병원에서 무엇을 하였는지 

알 수가 없습니다.

사고가 나고 둘째 날 

저녁 눈을 감았을 때

31년 동안 살아온 모든 삶을 바라보고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깨닫고

회개의 눈물을 흘리게 된 모든 것이 

하나님의 자비가 없으면 불가능하였습니다.

아무도 없는 병실에서 죽음의 공포가

내 앞에 다가오고 있을 때 

눈물을 흘리며 

기도할 수밖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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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나 같은 죄인이 무엇을 잘했다고 

하나님께서 내 기도를 들어주셨을까?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로마서 1013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나 같은 죄인을

구원의 방주로 인도하시기 위하여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입니다.

내가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요 

죄인을 불러 

회개시키러 왔노라 누가복음 5:32

세상의 삶에 취하여 살아가던 아들이

예수님을 믿고 구원을 받도록 

생전에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셨던

어머니의 기도가 하늘나라 

기도 창고에 쌓여 있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아들이 기도할 때 손을 잡아 주신 것입니다.

어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기도하고 

교회를 섬긴 땀방울은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고 하늘나라에

쌓여있다는 것을 

깨닫게 된 것도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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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세상에 태어내서 처음으로 상을 받은 날


하나님의 은혜로 세례를 받을 때부터

성경을 눈으로 보고 노트에 필사하면서

내 삶을 바라보니

탕자와 같은 아들이 바로 

나 같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건강한 육체는 안개와 같이 사라지고 

바람이 불면 넘어갈 수밖에 없는

약한 장애인의 삶을 포기하지 않고

34년 동안 살아온 것에 감사하며 

지극히 작은 일이지만,

교회에서 오늘까지 

쓰임을 받을 수 있어 감사합니다.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나 같은 죄인이

하나님의 은혜로 변화된 것에 감사하며

내 삶의 여정을 

34년이 지난 오늘까지 살도록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께 모든 영광을 드립니다.

2019년 11월 15일 

예안교회를 섬기는 이충묵 집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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